시청각 언어 활동: 정서영전

«정서영전»과 연계한 ‘시청각 언어 활동'은 정서영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와 함께 작가의 조각과 텍스트 등에 대한 연구를 펼쳐놓는 시간으로, 작가가 펼쳐놓은 미술적 사고를 경유하여 미술에 관한 언어를 발생시켜 보려는 시도입니다. 정서영의 작업에 조각적 상태를 능가하는 온전한 언어를 덧붙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언어 활동'이라 이름붙은 이 자리에서 이한범, 현시원, 안인용은 정서영을 둘러싼 비평, 공간과 도면의 문제, 작품 제목 등을 추적해 나갈 예정입니다. 
*일시 : 2016년 10월 8일(토) 오후 4시
*장소 : 시청각 마당
*신청 인원 : 30명 (선착순)
*참가비 : 무료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nNLv962BPszUM6Gt21dLnzMnLZMWM4vQz7jIBrm-G1xOA7Q/closedform

"긴 시간동안 ... (작업이) '애매모호함', '섬세함'과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될 때 난감함을 느꼈다. 세상의 어떤 문제를 지시하거나 재현하고 있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사용법을 바로 적용할 수 없는 작업을 자꾸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그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것 같게 된다. ... 
비언어적인 상태에 대해서 지시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만큼 활동적이고 구체적인지를 맥락으로 이해하게 되는 언술이 나오는 것, 그것이 반갑고 숨통이 트이는 경험이었다. 사람들이 이해했다, 소통했다, 가닿았다고 할 때, 자기가 알고 있는 언어로 말할 수 있으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사실 자신이 알고 있는 몇 개의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즉 언어를 찾고 설명을 하려 하면서 오히려 같은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로부터 탈출하고 자유로우면서 상황을 즐겁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어떤 상태가 일어나는지를 말해주고 이야기하고 이어놓음으로써 그 상태가 무엇이 될지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풍부한 상태로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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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eehanbum.com/talking/chung-and-on-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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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영과 정서영에 대한

정서영 작가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닌) 말을 하는 자리가 마련된다고 전해 듣고 무척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육성으로 전달되는 말이 글에 비해 더 선언적이고 흩어지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정서영의 작업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입을 통해서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차라리 좀 더 선언적이기 위해 이번에는 정서영을 경유해 당대 미술이 무엇인지, 그 안에서 정서영이 ‘어떤’ 실천을 해 온 것인지에 대한 나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새벽질주로부터

2014년 나는 함께 공부하던 장지한, 김민엽과 함께 경리단길에 자리 잡았던(지금은 방배동으로 옮긴)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새벽질주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이 전시는 대외적으로는 ‘주제 없는 전시’라는 컨셉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주제(이슈), 담론, 개념을 중심으로 내러티브화 되는 큐레토리얼 중심의 전시가 미술의 실천과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술의 미학적-정치적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반발이었다. 이는 이해 가능한 논리적 언어로 작품의 미적 가치를 환원/종속시키고 지식의 예시로 삼는 어떤 경향에 대한 거부였기에 작품이 언어에 대해 자율적인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좀 더 큰 범주에서 보자면 예술이 삶, 사회와 맺는 방식에 대해 재고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삶을 미학화 한다거나 투쟁을 위해 소용되지 않고 자율적인 것으로 해방된다면 예술이 어떤 모습일지, 그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이러한 태도의 자장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작업의 형식이 그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다섯 명의 작가에게 전시를 같이 만들어보기를 제안했다. 전시에 대한 아이디어와 글쓰기를 담당했던 장지한은 전시책자의 서문에서 바디우와 랑시에르의 예술의 자리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문장들을 인용하였지만,1 돌이켜 보면 우리가 실험해보고자 했던 것은 언어를 비워 낸 자리에 언어로 환원되기 어려운, 혹은 불가능한 양태를 지닌 특정한 미적 실천을 위치시켰을 때, 그 장면이 어떠하며 전시의 감각과 실제적 기능이 무엇인지 직접 관찰해보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미술의 정치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그것이 정말로 무엇이며 과연 지금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일이었던 것 같다. 언어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에는 개인이 겪는 문화, 사회와의 갈등을 텍스트화하여 재현하지 않고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전면화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문화와 결별하고 현실사회에 등 돌린 듯한 이러한 예술,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적 태도를 구현시켜 본 이 실험은 당연히 반향을 얻지는 못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과연 뜬구름 같기도 한 ‘비언어적 실천’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이 유효한 미학적-정치적 가능성을 생성해 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이야기로 엮이길 거부했을 때 전시장은 어떤 장소가 되고 작업과 무슨 관계를 맺을까, 이런저런 질문들이 있었지만 대답을 얻지는 못한 채 전시가 끝이 났다.

스펙터클하고, 세련되고, 재미있고, 즉각적으로 감각(공감)되는 미술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미술의 정치적 가능성을 재탈환한다는 것이 고리타분한 것임은 당시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지만, 바로 그러한 미술이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 급진적일 가능성을 지닌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질주의 연장선으로 무언가를 이어나가기를 기약했는데, 작가들과의 서신교환으로 채워진 책자의 마지막에 장지한은 1번부터 7번까지 번호를 나열하여 “새벽질주”의 이름으로 선언적인 문장들을 적었다. 그 중 4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4. 정서영: 극단적인 몰이해의 상황을 돌파할 것”

우리 공동의 기획자들은 단어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고 의미하는지 합의를 보지는 않았지만 서슴없이, 전적으로 공감했고 책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지난 3년간 내게 달라붙어 떼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이 문장에 대한 나의 독해는 두 가지였다. “극단적인 몰이해의 대상인 정서영의 작업을 말할 것”, “극단적인 몰이해의 상태인 정서영적 미술실천을 가시화할 것.” 고유명사로도, 일반명사로도 정서영은 한국 당대미술에서 몰이해의 상태에 끼어 있다고 생각했다.

2. 정서영에 대한 몰이해

다만 지금은 몰이해를 ‘극단적인’이라 형용하고 싶지는 않다. 지난 시간동안 정서영을 읽기 위한 시도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각각의 글들을 모아놓고 봤을 때 이 글들의 수사는 어느 정도 정서영의 작업이 어떠한가를 피상적으로 드러냈다고 본다. 그러나 대부분 그 말들이 다다르는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잘 알 수가 없다.2 사실 이러한 성급한 글쓰기의 관습(?)은 정서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평론가 곽영빈은 ‘SeMA-하나 평론상’ 수상작인 “수집가 혹은 세상의 큐레이터로서의 작가: 구동희론”의 첫 번째 단락을 “구동희라는 비평의 곤궁”으로 이름 붙였다. 곽영빈은 이 한 단락을 통해 중요한 작가로 공공연히 인정받아 온 구동희를 축으로 공회전하는 비평의 수사들을 잘 정리해서 보여준다. 비평언어의 (질적인)허술함은 90년대 이후 미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작가들에게 있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3

이들은 쉽게 말해 90년대 이후 등장한 중요한 주체인 ‘개인’이다.4 90년대 초반의 포스트모던 담론이 8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집단적 차원의 격자를 형성하고 급격하게 사라졌다면, 이 후 몇 년의 공백을 두고 순차적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부터의 개인은 내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데올로기의 종언, 거대서사의 종언, 즉 역사의 종언이 명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바로 그러한 시대를 표상한다거나 시대가 반영된 주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작업’이 이전의 것과 맥락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일종의 단절이 이루어진 탐구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5 담론 중심적이고 집단적 경향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던 미술의 언어는 급격하게 변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허둥댔으며 세밀한 감각을 파악하는 습관이 부재했었기에 등 떠밀린 형식주의자가 되어 단상을 제시하는 것에 그쳤다고 생각한다. 혹은 여전히 담론 기반의 서술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한줌으로 쥐어질 수 없이 바스라지는 개인들을, 제도는 세대론과 같은 허술한 필터로 열심히 서사화하기 위해 노력하나, 그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개인들에 접근하는 프레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내가 중점을 두고 생각하는 것은 매체이다. 이 용어가 식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이미 너무나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어서 그럴 테다. 90년대 초반의 미술을 논할 때 특히 매체라는 용어사용이 두드러졌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을 지시하는지는 모호하고 제각각이었다. 모더니즘진영은 시대의 미감을 드러낸다며 신세대미술을 다변화된 매체라는 잣대로 해석하였고, ‘소통’이라는 공허한 표현으로 봉합시키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했다.6 그러나 여기서 다원성이란 단지 양식적 다양성에서 비롯된 개념 도출이었다.7 미비연으로 대표되는 현실주의는 변모한 시대상황에서 현실체제에 ‘비판적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매체’라는 프레임에 경도되었다. 이는 모더니즘진영의 양식으로서의 매체인식보다는 더 적극적인 것이었지만 너무 목적론적이었다.8 그린버그에서 개념미술로, 그리고 다시 로절린드 크라우스로 이어지며 예술의 근본적인 존재론적 쟁점을 논박하게 했던 서구 매체론의 역사에 비하면 한국에서 매체는 ‘어떠한 미감을 자아내는 질료와 양식’이나 ‘의미론을 만들어 내는 기반요소 혹은 구조’, 정도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매체는 언제나 현실계와 표리관계로 파악되었는데, 나는 이것이 예술의 언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후 현실의 반영, 사회비판의 프레임으로 포섭되지 못하는 개별적 미적 실천이 등장했을 때 매체라는 용어는 (오히려 더 강렬하게 탐구되어야 함에도) 사라져 버렸다. 매체에 대한 편협한 이해도 있었겠지만, 시대의 이목이 모두 포스트-미디어(post-media)에 쏠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3. 정서영의 매체

나는 정서영이 90년대에 최초로 등장한 급진적 매체실험의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급진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서영의 작업이 전에 없던 방식으로 매체를 재정의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그 매체의 사용에 따른 미적체험의 양상 때문이다. 95년의 금호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의 도록에 실린 김정란의 글은 지금 읽어보아도 정서영의 작업에 관하여 꽤 많은 중요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그는 정서영의 관심이 궁극적으로 작품 자체라기보다는 “작품의 조건”에 있다고 말하며, 조각가로서의 정서영은 작품 제작자라기보다는 작품의 조건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견 하나의 체계로 수렴시키지 못할 만큼 “무수한, 발랄한, 따로따로 말하는” 정서영 작품의 욕망은 의외로 단순한데, 모든 것을 “고정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9 날것의 재료를 조형한다는 표면적 의미로 조각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정서영의 작품을 왜 조각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심대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물(物)에 이르는 합의를 조형하는 것으로 조각을 파악한다면, 조각은 일종의 조건의 총체임과 동시에 조건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기능한다. 즉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하나의 체계로서의 현존재(Dasein)이지 사물 그 자체는 아니다. 즉 이때의 조각은 사물의 복수성 사이에서 형성된 비가시적이고 유동적인 자기장이다. 다른 사물이 개입했을 때 일시적으로 그 자장이 변화하는 것처럼, 정서영의 조각 또한 유동적인 것이며 그는 그것을 인정한 채로 내버려둔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서영은 조각의 기능을 발견하여 매체화 했다고. “90년대에 조각, 드로잉 작업을 해오다가 지난 몇 해 동안에는 퍼포먼스, 사운드 설치 등 다양하게 확장된 방식으로 작업”10 해 온 것은 외견상 그래 보이는 것일 뿐이며, 내가 보기에는 발생 가능한, 혹은 발생한 사건의 전모를 면밀히 조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그는 텍스트, 몸, 소리, 공간, 장소, 시간, 관객(결국은 모두 사물로 수렴할 수 있을)등을 통해 모든 가능세계를 참조하려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서영이 어떻게 조각이라는 매체를 사용하는지 질문하는 일일 것이다. 대답은 개별 작업에 따라 다를 테지만, 정서영이 하나의 작업을 어느 층위(혹은 시점)에서 더 나아가길 멈추는지에서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2007년 에르메스에서 처음 선보였던 동서남북은 바퀴가 달린 일종의 ‘펜스’가 사방으로 헐겁게 이어져 네모난 공간을 구획하고 있으며, 그 중 몇몇은 비스듬히 서 있어 마치 내부의 공간이 밖으로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낮게 서 있는 철제 구조물은 합의된 사용에 반발하거나, 비껴가거나, 다름을 강조하지 않는다. 구조물의 각 변에는 각각 하나씩 구체가 올려 진 펜스가 있는데, 이 구체에는 방위를 상징하는 기호가 적혀있다. 이 기호가 실제 방위와 일치하는지 안하는지는 중요한 의미의 요소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단지 ‘실패’의 상태를 보여줄 뿐이기 때문인데, 살짝 비스듬히 서 있다던 바로 그 펜스 위에 구체가 올려 져 있음으로 인해 결국 사방으로의 정확한 정향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정서영은 조건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매체의 소명은 다 했다고 보는 것 같다. 바퀴 달린 펜스가 아주 일시적인 공간을 상상하게 하는 것처럼, 그의 매체는 상황을 직조하는 것으로서 종결된다.11

표리부동하다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일 뿐 작업의 내적 질서가 함축하는 근원에는 가 닿지 않는다. 그 근원을 명명할 수 있다면 매체가 자율적으로 작동 가능한 예술실천의 장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서영의 매체는 스스로 ‘수행적(performative)’이다. 그의 매체는 사물의 조건을 조각의 조건으로 해체시킴으로써 발생하였고 다중의 삶-세계를 매개한 후 사라진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망각되는 매체’라는 것은 예술의 변증법을 상상하기 위한 최초의 전제다. 변증법에 소요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제안 할 수 있을까? 이는 아직 정확하게 말하기 힘들 것 같다. 그러나 정서영의 조각이라는 매체의 발명은 좀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매체의 ‘발명’ 이라는 수사는 거의 전적으로 로절린드 크라우스의 포스트 미디엄(post-medium)에 관한 논의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도 스스로 계속해서 밝히듯 이 개념은 스탠리 카벨의 ‘오토마티즘’ 용법에 기댄다. “현대의 예술가의 과업을 그 예술분야의 새로운 한 사례를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분야 속에서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내는 것”12이라고 말하는 카벨에게 매체는 물리적 기반이나 형식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 아니며, 그 개별적 ‘사용’이 문제가 된다. 여기서 ‘사용’과 ‘발명’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하는데, 사용 방식의 다변화가 곧 발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다변화된 매체의 결과물로 주로 일컬어지는 것이 바로 설치(installation)이고, 크라우스는 의미 없이 증식하는 설치미술에 큰 환멸을 지녔다.) 중요한 것은 그 매체가 어떤 상태에 도달했느냐, 혹은 어떤 상태를 만들어내느냐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꾸어 말하면 매체가 일종의 허구적(fictional) 세계가 되었을 때 발명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허구세계를 가시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매체의 사용이다. 여기서 매체의 발명이 예술을 지속시키는 가능성이라는 생각은 좀 더 곱씹어 볼 만하다. 매체가 가능세계를 지시한다면, 바로 그 매체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던 내러티브가 아닐까. 크라우스의 생각이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명백히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대의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조형들, 이미지들, 행위들은 매체라는 범주 속에서 그 지형을 파악하기가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예술의 가능성을 믿는 한 비평가가 만드는 방주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매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서술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대착오’ 적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시대와 유리되어 시대의 어둠속에 도사린 담론적(discursive) 의미의 “동시대”에 가 닿는 것은 아닐까.

최근 나는 내가 경험한 미술 속에서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범주화하게 되었는데, 그 범주는 각각 매체, 이미지, 서사이다. 이것이 긍정적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작업들이 이를 축으로 변화무쌍하게 형성되고 작동하고 있다고, 혹은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별개의 자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 작업 안에서도 이들은 혼재되어 나타나고, 서로가 간섭하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며, 심지어 텅 비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당대 미술의 결과물은 어떤 경향으로 통합되기 힘들다. 이것이 발명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이것저것이 예술이냐 아니냐, 미술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서영의 경우처럼 개별적인 사건(미술)들이 어떻게 당대를 조건화 하여 전면적으로 드러내는지 ‘발견’하는 일이다. 정서영이 하나의 실천으로 파악되지 못한다면, 당대의 예술은 스펙터클, 문화, 지식, 윤리의 톱니바퀴에 어그러지듯 맞물려 변속 될 뿐임을 방증한다.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징후적인 것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아니, 오히려 이미 너무도 만연했기에 중요하다고 역설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미학적인 중지를 일으키는가? 기술적 지지체를 다시 호출하는 크라우스의 태도는 내게 매우 양가적으로 다가온다. 예술의 자리를 향한 진정성은 존경하지만, 그다지 유연하지 못한 전략적 대응 같다. 당대를 마주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 피로한 일이라는 것은 모두가 느끼는 바이다. 그러나 그 피로함을 업고 가야 하는 것이 또한 당연한 임무로 주어진다. 앞으로 이 발견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기에 더더욱 치열해야 한다. 이 치열함은 ‘스스로 빛나는’ 것을 찾기 위해 투입되어야 하며, 바로 이 “스스로-허구인(self-fictional)” 미술의 실천은 하나의 성좌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 성좌라는 것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서영을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개념이자 방법론이 될 수 있다.

4. 정서영이라는 몸체

미술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정서영이라는 작가는 언젠가 한참 후에 풀어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서영의 작업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무척 섬세한 언어의 발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섬세한 언어의 발명’을 단지 수사로 여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또한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작업의 질서에서 이 언어 발명의 필연성이 유래하기 때문이다. 앞서 나는 정서영을 매체라는 관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판단했지만, 그것은 대강의 방향성에서만 미술사의 일반적인 용법으로 적절할 뿐 작업을 온전히 수렴시킬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두 번째는 여전히 지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작업은 이미 20여 년 간 축적되어 왔기에 하나하나 전방위적인 시간-공간의 해체 속에서 의미로 녹아들어가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서영에 필요한 언어는 정확한 이론의 그물망, 즉 하나의 체계를 짜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 체계 안에서 작업이 인접 학문과 상황적 맥락에 의해 끊임없이 갱신되도록 위치를 찾아 세우도록 해야 한다. 이는 단시간에는 서술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정서영의 작업이 ‘무엇what’이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 이와 같다면, 정서영의 작업이 적절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경우는 이제 미술사연구의 새로운 모델을 요하는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정서영은 미술사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야 한다.

정서영을 마지막에 풀어내야 한다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이라고 묻는 것과 상보되기는 하지만 하나로 완전히 봉합될 수 없는 것이기에 독립적으로 다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중요한 질문은 “왜 지금, 여기에서” 정서영을 중요하게 다루느냐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에 관해 대답하기 위해 했던 고민을 톱아 보면 나는 이제까지 정서영을 향해 그 실천이 ‘어떤which’ 것인지 질문했던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이는 정서영이 질문의 축이 되었을 때에도 결국은 내가 겪고 있는 당대의 미술이라는 지형에 무게중심이 있음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 말이, 정서영이 당대적이라거나 아니라고 평가내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당대적’, 혹은 ‘동시대적’이라는 용어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총체성의 일부일 뿐이며, 작품이 전면화 시키고 있는 ‘어떤 것’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자, 작품이 기능하는 수행성의 이름이다. 내가 ‘어떤’ 이라는 질문의 방향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서영을 ‘비롯한’ 급진적인 당대미술 실천의 위계 없는 성좌를 파악하는 일이지 정서영을 선별하는 일은 아니다.

정서영을 경유한다는 것은 당대의 급진적인 한 장면을 보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의 다발이 모인 하나의 몸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몸체는 앞서 말했듯 지난 20여 년간의 미술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생한 ‘특정한 미적 실천’의 움직임들이 구성해왔던 것이자 여전히 구성하고 있는 가시적인 (그러나 가시화되지 않은)실체이다. 거칠게 이것을 ‘아방가르드’라 했을 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아방가르드는 분명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방법론이나 네오-아방가르드의 성과를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도저히 통합할 수 없이 분화된 수많은 형식과 주제들, 그리고 제도 이외의 장소들이 폭발하는 가운데서(또한 물신화된 아방가르드의 홍수 속에서) ‘아방가르드’의 내적 논리는 여전히 발명되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면, 당대의 개별적인 실천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진다. 미술은 각각의 고유한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당대는 짜깁기 된 풍경으로 인지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것들이 구축하는 모든 상황, 매체와 이미지, 삶-사회의 관계와 역사성의 자체가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논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내게 중요한 것은 개별적 실천이 현재에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관찰하고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즉 모든 언어가 시급하지만 정서영이 특별히 시급한 것은 아니다. 앞서 나는 정서영의 실천이 지니는 미학적-정치적 함의는 역사 속에서 해체됨으로써 당위성을 획득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정서영이 해체되어야 할 역사, 혹은 역사적 서술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에 시급한 언어란 역사이기도 하다. 이때의 역사는 당연히 연대기가 아니라 사건의 난삽한 연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대의 몸체를 형성하는 작가들이 공명(resonance)했던 지점은 무엇이며, 장막에 가려진 그 장소(Blind Spot)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저항적 픽션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혹은 픽션이 저항적일 수 있다면, 미술에 대한 글쓰기는 아직 할 일이 남지 않았을까.

각각의 시간에 태어난 개별적 실천들은 독립적이면서도 상호적인 것이지만 줄을 세우고 담론으로 우겨넣기에 친숙한 미술사와 비평은 여지없이 선형적 내러티브를 만들려는 충동이 강하다. 때문에 당대에 산포한 ‘특정한 미적 실천’에 시간을 부여한다면 인과적으로 서술되고 쉬이 위계가 생겨버리는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 실천의 몸체가 정서영이라는 고유명사로 포섭되고 제가끔의 잉여분이 무시된 채 닫혀버리는 것이다. (정서영이라는 고유명사 또한 그것이 신화화 되었을 때 매체의 힘은 폐기된다.) 그리고 이는 명백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 같다. 최근 몇 년 간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미술에서도 유행처럼 이루어지는 과거의 복기는 그 목적의식이 불분명한 채, 방법의 정교함을 결여한 채 과거를 재연하며 신화화하고 있다. 현재는 맹렬히 소모되고 있으며, 정서영에 대한 나의 거리두기는 이러한 파도를 비껴가고 싶은 소극적인 전략일지도 모르겠다.

5. 다시 새벽질주

장지한이 적은 새벽질주의 선언 중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7. 번역: 공백을 채우는 것”

공백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공동의 협상이 필요하다. 극단적인 회의주의자로서의 비타협적 협상 말이다.



  1.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미학’이라는 말은 철학과 예술이 맺는 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관계에서 예술은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이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도 예술을 철학을 위한 대상으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미학적인 사변에 반하여, 비미학은 몇 가지 예술 작품들의 독립적인 실존이 만들어내는 순전히 철학 내적인 효과를 기술한다.” 알랭 바디우, 장태순 옮김, 비미학, 이학사, 5쪽. “다른 한편 미학은 그것의 정치, 또는 그보다는 두 상반된 정치들 사이의 그것의 긴장을 갖고 있다. 예술로써 제거되면서 삶이 되는 예술의 논리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예술의 논리 사이의 긴장 말이다. 비판적 예술의 어려움은 정치와 예술 사이에서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크 랑시에르, 주형일 옮김, 미학 안의 불편함, 인간사랑, 84쪽.  

  2. 안규철은 정서영의 작업을 이르러 “정제된 내적 질서의 체계”라고 했으며(“말하는 그림과 보이지 않는 형태” 정서영展도록 중, 금호갤러리, 1995), 박찬경은 그것이 “질서라는 것의 어떤 내적 불안을 체험”하게 한다고 말한다.(“전망대; 정서영의 사물”, 전망대展 도록 중, 아트선재센터, 2000) 니콜라 디트리히는 정서영이 “일상의 세계가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넘어감을 드러내는 분리된 영역”을 만들며 이는 “사물세계와 사고세계 사이의 문지방으로 기능”한다고 평가했으며(책상 윗면에는 머리가 작은 일반 못을 사용하도록 주의하십시오, 나사못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도록 중, 아뜰리에 에르메스, 2007), 김현진은 모리스 블랑쇼의 말을 빌어 정서영의 작업이 “존재의 부재, 즉 바깥(Dehors)을 감지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해석했다.(스스로 빛나고 진동하는 사물과 언어아트인컬처 2008년 1월호) 홍성민은 정서영의 2010년 작업 Mr.Lee와 Mr.Kim의 모험에 대해 “분배된 역할의 고리를 끊음으로서…스토리텔링 속에서 찾아낼 수 없는 Mr.Lee와 Mr.Kim의 존재는 결국 관객의 몫이 되어버린 채, 모험이란 결국 정처 없는 탈주”라고 서술했다.(웹진 포도포도 2010년 6월) 김성원은 같은 작품에 대해 “정서영의 실제 ‘라이프 캐스팅’은 사실과 비사실, 실제와 가상,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공존하는 낯설음과 불편함에 대한 징후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하며, 이 “징후를 진단하고 활성화시키는 것”은 관객임을 강조한다. 이대범은 2011년 사과vs.바나나전에 대한 리뷰에서, “언어적 시스템을 반성하고 회의하게” 함으로써 “무중력 공간”을 구축한다고 표현한다.(이대범, 투명한, 반투명한, 불투명한 미술, 338쪽.) 정서영에 관한 가장 권위있는 글은 김현진이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에 길게 서술한 평문일 것이다. 이 글은 다소 일반론적 결론에 이르긴 하지만 개별적인 작업 및 그간의 전시들을 아우르며 세부적으로 따져 들어가 언어, 사물, 수행성, 장소 등의 관계망 속에서 ‘자기 정치’를 지닌 것으로 성격을 규명하려 시도하기에 다른 글들보다 정서영을 폭넓게 매개한다고 볼 수 있다.  

  3. 정헌이는 1990년대의 미술을 회고하는 글에서 특히 1990년대에 “비평의 부재”에 대한 불만이 높았음을 밝힌다, 그는 “우리 미술계의 이론가들이 실상 1990년대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정헌이, 『한국 현대 예술사 대계 6-1990년대』, 266쪽) 이 말은 역으로 당시의 비평이 현장과 작품에 대해 이론과 담론, 이데올로기에 의지하려는 성향이 강했음을 드러낸다. 비평이란 것을 그때그때 눈앞에 던져지는 미지의 것에 대해 관찰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정헌이의 말이 드러내는 것은 비평의 부재가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을 가시화시켜줄 수 있는 ‘비평적 태도의 부재’다. 평론가가 “이론적 관점으로 범주화시키면서 작가의 개별적 독특함이 희생되는 문제는 이 시기 평단의 특징이자 실책 중의 하나”라는 문혜진의 지적은 적절하다. (문혜진,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129쪽.) 1990년대 후반 이후 이론을 향한 관성은 이보다는 약해지는 것 같지만, 작업을 보는 프레임이 과거의 수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대표적인 예로는 노재운 작가를 둘러싼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론가 강수미는 자신의 블로그에 “작가 노재운씨가 말하고 있는 그의 작품론”이라는 제목으로 “작가 노재운이 어느 비평가와의 논쟁 와중에 쓴” 글 중 일부를 발췌해 올려 놓았다. 이는 아트인컬처 2004년 7월호에서 진행되었던 “80~90년대 한국미술, 이제는 정리해야 한다”라는 라운드테이블에서 스킨 오브 사우스 코리아 전시를 다룬 내용에 반응한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노재운은, 본인에게 이미지는 주제나 내용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무심히 연결되어 인터페이스가 될 뿐”인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전시가 ‘전쟁’이라는 주제로 함몰되는 것에 반발한다. 또한 ‘풍자’나 ‘비판’을 실천하는 ‘민중미술’과는 하등 관계가 없으며, ‘웹’을 비롯한 공간에 대한 오해에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이는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보다는 개별적 작가주체가 탐구하고 실천하는 미적 결과물과 언어의 간극이 여전히 아주 멀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김장언은 노재운의 이 전시에 대한 리뷰에서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데, 노재운의 일명 이미지 ‘스킨’은 “바로크적 쾌락의 상태”로, “어떤 본질을 지시하지 않고 사물을 발명하지도 않으며 단지 수많은 ‘주름’을 생산”하는 것이며 이는 “동시대의 징후들을 데코리이팅 할 뿐”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러한 스킨에 대해서 민중미술의 흔적을 찾거나 혹은 정치적 진정성이나 재생산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다소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김장언, 미술과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99~100쪽. 이 글은 공간지의 2004년 8월호에 바로크적 시나리오: 노재운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전시리뷰이다.)  

  4. 앞서 언급한 문혜진의 저서 서문에는 이러한 개인들의 존재를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 소그룹 운동과는 무관하게 개별적으로 자기 세계를 모색한 개인의 부상도 주목할 만 하다. 거대 담론이 무너지면서 갈수록 거세진 개별화의 물결은 스스로의 문제의식에 충실했던 작가들이 각자의 세계를 보다 공고히 하는 데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다.” 문혜진, 앞의 책, 11쪽.  

  5. 여기서 단절은 다소 극적인 용법이지 완전히 전환된 국면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연속성과 무언가에 대한 반응에 의한 발생일 것이지만, 이들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속성보다는 새로이 융기한 것에 방점을 찍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6. 다음 글에서 그 내용이 잘 드러난다. 윤진섭, 매체의 활용과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가나아트, 1993년 1-2월. 

  7. 문혜진, 앞의 책 120쪽.  

  8. 박신의는 1990년 금호미술관에서의 혼합 매체전 대한 리뷰에서, 작업들이 매체 고유의 의미를 고려하지도 않고 그 필연성이 결여된 채 장르 경계의 파괴를 보이고 있다며 비판한다. 이어 이럴 경우 매체의 확장이 어떤 실천적 의미를 갖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이러한 경향은 매체의 본래적 의미와 기능을 미적 형식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으로 한정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박신의는 러시아 구성주의적 매체활용을 예로 들며 매체의 핵심적 개념을 독립된 양식이 아닌 보다 효율적이고 실천적 목적을 담지 하는 도구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내용적 계기 없는 매체의 양식화가나아트, 1990년 7-8월) 기혜경에 따르면 미비연에는 매체를 단순한 미술의 재료가 아닌 언어로서의 이미지와 그러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사회 변혁을 위해 시각매체를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는 공통된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즉 이들에게 매체는 생산수단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이 매체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의 전복적 가능성에 관심을 집중시켰다.(기혜경, 문화변동기의 미술비평-미술비평연구회의 현실주의론을 중심으로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3년 124쪽~128쪽.)  

  9. 김정란, 사물들과의 조금 까끌까끌한, 움직이는 관계-조심스럽고 사랑스러운 불안정서영전 도록, 금호갤러리, 1995 

  10.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 18쪽.  

  11.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서영은 이렇게 말한다. “엽서로만 봐서 자세한 것은 파악할 수 없는 극히 작은 크기였던 이것(전망대)을 현실 공간에서 조각으로 만들어 내기로 했을 때, 수많은 구체성을 만들어 내야 하는 숙제와 직면했다. 엄지손가락만 한 이미지를 현실 공간으로 쫙 끌어낼 때 크기, 형태, 재료, 방법까지 내가 해결해야 할 엄청난 덩어리의 과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이 과제의 핵심은 결국 사물을 내 눈앞에 어디까지 끌어오느냐가 문제였다. 전망대를 내가 그러한 크기로 만들어서, 내 손안에 있는 전망대도 아닌, 저 멀리 있는 전망대도 아닌 나와 일정한 육체적 거리가 생기는 위치를 생각나게 하는 그 전망대를 만든 결정이란 것이 사실은 내가 이 사물을 어떤 세계관 속에서 내세우는가의 문제를 말해주는 거다.” (아티클 2014년 5월호, 29쪽.)  

  12. 스탠리 카벨, 이두희, 박진희 옮김 눈에 비치는 세계, 이모션 북스, 2014,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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